-행복 느끼게 하는 향수 '페로몬- 부산일보,2008,12

생물들은 같은 종류의 다른 개체에게 작용하여 생리적 혹은 행동 반응을 유발시키는 외부 호르몬을 방출하는데 이것을 페로몬이라 한다. 특히 성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을 '성(性)페로몬'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페로몬이라고 하면 성페로몬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처음 소개된 페로몬은 1956년 독일의 생물학자들이 50만 마리 누에나방의 복부로부터 분리한 '봄비콜'이다. 이 물질은 수컷 나방을 유혹한다. 이론적으로 한 마리의 암컷에서 퍼져 나온 봄비콜은 1조 마리의 수나방을 유인할 수 있다.

여인들이 좋아하는 사향노루의 배꼽 뒤쪽의 주머니 속에 든 '무스콘'이라는 물질도 일종의 페로몬이다. 심해에 사는 아귀는 수컷이 덩치가 큰 암컷의 몸에 붙어 기생하는데 망망대해에서 암컷의 냄새를 맡고 찾아간다. 쥐나 개도 이성을 유인하는 페로몬을 방출한다.

마취한 숫쥐가 있는 우리에 정상적인 숫쥐를 넣으면 정상적인 숫쥐는 마취된 쥐를 무시하거나 공격하는데, 마취한 쥐에 암컷의 생식기에서 분비된 물질을 발라 두면 정상적인 수컷이 마비된 수컷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교미하려 한다. 수캐가 암캐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냄새를 맡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중국의 옛 시인은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고 노래했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사랑은 눈이 아니라 코로 들어온다.

냄새를 맡는 후각은 진화적 관점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 중의 하나이다. 또 맛과 냄새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혀의 미각은 4가지밖에 없고, 다른 향기가 어울려서 좋은 맛을 느끼게 한다. 감기가 들거나 코가 막혀 있으면 음식의 맛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의 후각세포는 비강 상층부 3㎠의 작은 부분에 밀집해 있다. 개의 후각상피는 사람의 40배에 달한다. 그래서 냄새에 아주 민감하다. 사람도 개만큼 후각이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1만 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우리 몸속의 다른 신경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지만 60일 정도의 수명을 가진 후각신경세포는 줄기세포로부터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져 교체되며 이전의 냄새에 대한 기억도 보존된다. 그리고 사람이 가진 유전자 중 1%가 후각과 관련된 유전자다. 뿐만 아니라 후각은 신경생리학적으로 기억이나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후각신경은 성적 행동과 모성행동을 관장하는 시상하부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후각은 기억·감정과 밀접한 연관

동물들이 페로몬을 감지하는 곳은 코 속에 있는 보습코기관(VNO)이라는 부분이다. 사람의 경우는 이 기관이 발생 중에 대부분 퇴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도 페로몬을 분비하는 것 같다. 젊은 남자의 겨드랑이 땀샘에서 성호르몬과 유사한 휘발성 스테로이드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것을 젊은 여성의 윗입술에 발라주면 여성의 생리주기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과부는 사내의 땀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땀 속에 페로몬이 들어 있어서일 게다.